시판 허가 신약 56%만 보험 등재…"치료 골든타임" 놓친다
산정특례·RSA 등 제도 허점 많아…"희귀질환 특성 맞게 개선해야"
"생명과 직결된 신약 신속 등재 등 환자중심 정책 수립 필요"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 건강보험에 신속하게 등재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의견을 전달했다.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 보험 등재가 늦어져 환자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는 진정에 따른 결정이다. 진정 자체는 각하됐지만 인권위는 "국가는 국민이 치료할 약제는 있으나 경제적 이유로 환자가 사망하는 과정에 이르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다행히 킴리아는 인권위 발표 다음날인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하고 급여권 진입에 성공했다. 지난해 3월 한국노바티스가 등재를 신청한 지 10개월만이다.

CAR-T 세포치료제인 킴리아는 1회 투약만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어 환자들에게는 마지막 희망 같은 존재다. 인권위에 킴리아 진정을 낸 급성림프구성백혈병·림프종 환자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3~6개월에 불과했다. 하지만 킴리아는 앞서 암질환심의위원회 통과에만 7개월이 소요됐다.

킴리아와 같은 날 1차 치료제로 급여가 확대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이번 약평위 통과까지 4년을 기다렸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성분명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는 지난해 5월 급여 신청 후 '감감무소식'이다. 제때 치료 받지 못한 SMA 1형 환자 90% 이상이 만 2세 전에 사망한다. 졸겐스마 같은 첨단신약이 국내에서 시판 허가를 받고 급여 등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2년 이상이다. 인권위가 '생명'과 직결된 신약을 '신속히' 등재하라고 강조한 이유다.

'사회적 공감'에도, '국정감사'에서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화가 '신속'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높은 약값이다. 최근 등장한 혁신 신약 대부분 4.6억원(킴리아)부터 25억원(졸겐스마)까지 고가를 넘어 '초고가'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이런 고가에도 불구하고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8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진행한 '혁신 신약 급여 적용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 75.2%가 '혁신 신약의 건강 보험 급여'에 동의했다. 반대는 6.6%에 그쳤다. 고가여도 혁신적인 기전, 치료효과를 보이는 신약의 보장성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72.8%가 동의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희귀질환 치료제가 화두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 요청으로 출석한 희귀질환자 보호자들은 신약 급여 등재를 호소했다. 복지부 권덕철 장관은 "위험분담제(RSA)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약가를 설정하고 환자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제약사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신약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무용지물'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연도별 희귀의약품(신약) 허가 및 급여 현황(자료 출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국내 연도별 희귀의약품(신약) 허가 및 급여 현황(자료 출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시판된 희귀의약품(신약) 127개 중 56%인 71개 신약만 보험 등재됐다. 나머지 56개 신약은 시판 허가가 나도 비싼 약값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

이 때문에 수많은 희귀질환 치료제가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다. '혹시 이번에는'이란 생각에 희귀질환자와 보호자는 끊임없이 '희망고문'을 당한다. 환자들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친다고 호소해도 정부는 건보 재정과 형평성 우려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탈모치료제 급여화 공약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환자단체들이 "통탄스럽다"고 한 이유다.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희귀질환자들의 치료접근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모치료제 급여화가 논의되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가족들은 통탄을 금하기 어렵다"며 "의료선진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가 희귀질환자들에게도 제도적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희귀의약품에 보다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이 있는데 병은 아니다? 제도의 아이러니

물론 희귀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책은 꾸준히 나왔다. 지난 2013년 위험분담제와 경제성평가면제제도가 도입됐다. 2016년에는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돼 유병인구 2만 명 이하 희귀질환자도 산정특례를 적용받게 됐다. 해마다 대상 질환이 확대돼 올해는 1,123개 질환에서 희귀질환자 최대 29만명이 산정특례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제도조차 환자 접근을 가로막는 허들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희귀질환자가 산정특례제도, 희귀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 재난적의료비 지원사업 등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정부로부터 자신의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가 대상 질환을 늘려나가더라도 제도와 제도 사이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희귀질환 관련 제도에 따르면 약이 있는데도 환자가 자신의 병을 병으로 인정받지 못해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중앙대 약학대학 이종혁 교수는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발행하는 '엔젤스푼' 30호 '희귀질환 치료제의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제언' 기고를 통해 희귀질환 제도 자체가 품고 있는 접근성 저해 요소를 짚었다.

이 교수는 "제도 혜택을 받으려면 희귀질환 지정 절차가 필수적이다. 설사 허가된 약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더라도 대상 질환이 희귀질환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희귀질환 관련 제도 시행 주체가 제각기 다른 것도 문제라고 했다. 제도별로 주체가 다르고 까다로와 복잡한 절차 사이사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희귀의약품 지정과 허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당한다. 희귀질환 지정과 보험등재, 산정특례 등 업무는 복지부 총괄 아래 질병관리청, 심평원, 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한다. 의료비 지원사업은 각 시·군·구 지자체에서 맡고 있지만 재난적의료비지원사업은 공단 소관 사업이다. 

이 교수는 "희귀의약품과 희귀질환 지정 과정에서 제도적 문제로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 받는 환자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며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나 환자 중심 행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RSA나 경제성평가면제제, 있어도 '그림의 떡'

RSA나 경제성평가면제제가 있어도 혜택 받기 쉽지 않다. 희귀질환 특성상 '기대여명 2년 미만의 심각한 질환'이라는 기준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RSA가 도입되고 지난 2020년 1월까지 위험분담계약 체결 약제는 총 41종이다. 이중 항암제와 희귀항암제를 제외하면 희귀의약품은 8종에 그친다. 총액제한형 20종 가운데 희귀의약품은 5종뿐이다. 나머지 환급형 2종, 환급형과 총액제한형을 결합한 유형 1종이 전부다. 근거생산조건부나 환자단위 사용량제한형으로 위험분담계약이 체결된 희귀의약품은 없다.

국내 위험분담계약 체결 약제 현황(2020년 1월 기준)(자료 출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국내 위험분담계약 체결 약제 현황(2020년 1월 기준)(자료 출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기대여명 2년 미만'이라는 기준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김 국장은 "희귀질환자 가운데 기대여명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떤 환자는 기대여명이 정말 2년 미만일 수도 있다. 3년 이상을 바라보는 환자도 있다. 아니면 내일 단 하루인 사람도 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며 "질환마다 환자의 기대여명을 측정할 방법이 제한적인데 이런 특성이 제도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애초에 2년이란 기준 근거에도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종혁 교수는 암 외 희귀질환도 온전히 혜택 받도록 RSA와 경제성평가면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제도는 희귀질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RSA는 신약 보장성 강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희귀질환 특성상 유소아와 청소년 발병률이 높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지만 삶의 질을 매우 떨어트리는 질환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했다.

"생명과 직결된 신약 신속히 등재를"

전문가들은 제도 재정비와 함께 치료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지름길'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혁 교수는 "미국의 '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BTD)' 등 해외에서 혁신의약품으로 신속 승인된 희귀질환치료제는 우리도 신속히 허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복지대 최영현 특임교수는 '엔젤스푼' 기고문 '희귀질환 환자, 국가가 책임지고 살려야 한다'를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의 허가와 보험 등재를 동시에 진행하는 '신속등재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신속등재제도는 제약사가 시판 허가와 보험 등재 신청을 동시에 하면 식약처와 심평원도 동시에 심사·결정하는 방식이다. 식약처 허가 후 시판될 때까지 임시 약값을 설정해 환자들에게 우선 제공하고 이후 급여 등재 절차를 거쳐 최종 약값이 확정되면 차액을 정산한다.

앞서 인권위도 "대체 가능하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는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로서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에 사용되는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대해서 이 같은 제도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원샷치료제' 등 첨단신약의 효과가 획기적이라는 전제하에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허가와 동시에 건강보험에 우선 등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환자의 치료 보장성을 향상하는 환자중심 정책이라는 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보건의료정책 의사결정이 '환자 중심 경청'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희귀·난치성질환)환자의 목마름은 너무 심각한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느끼는 소외감이 의외로 크다. 실제 보건의료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일반 국민이나 환자의 참여가 극히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학적 사실은 전문가가 평가하지만 사회적 가치는 일반 국민이 도출한다"며 "국민이 임상·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필요하고 이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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